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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協の食材宅配【生活クラ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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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이 필요한 장소로

생활클럽그룹에서는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제일원전사고 발생에 따라 그룹전체가 지원에 임하고 있음과 동시에 제1차, 제2차 성금을 모금했습니다. 생활클럽후쿠시마에서는 태평양에 인접한 지역의 조합원은 쯔나미로 인한 이재와 더불어 아직도 가설주택생활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또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능문제의 불안도 불식되고 있지 않습니다. 연재 「대지진으로부터 2년」 최종회는 가설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는 메구로 토시코(目黒 敏子)씨와 요코야마 미요시(横山 みよし)씨의 비디오레터와 함께 전해 드리겠습니다.(2013년 3월 25일 게재)

후쿠시마를 덮친 3중 고통

요코야마 씨와 메구로 씨가 사는 가설주택의 전경미야기현 남부에 인접해 있는 후쿠시마현의 신치초(新地町). 마을 운동공원에 있는 가설주택에는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가건물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불편한 생활에 어려움을 더한 것이 방사능문제입니다.
금년 2월 하순, 가설주택을 방문하자 메구로 씨는 「이 지역에서 방사능의 공간선량이 제일 높은 곳이 가설주택에 인접한 장소. 지금 제염작업중입니다」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가설주택으로부터 10여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작은 언덕과 아이들의 놀이터였던 일대입니다. 「출입금지」의 로프가 쳐져 있고 안에서는 제염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대지진에 큰 쯔나미, 그리고 방사능문제. 신치초뿐만 아니라 후쿠시마를 덮친 것은 3중의 고통이었습니다. 특히 방사능문제는 피폭(被曝)과 그 걱정으로 가족관계에 미묘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신치초에 주택재건의 전망을 가진 요코야마 미요시 씨는 손자와 함께 살 것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그 꿈은 단절되어 버렸습니다. 이재 직후에 「내가 집을 잇겠다」고 한 수도권에 사는 아들이 「아이를 생각하면 걱정돼서 돌아갈 수 없다」고 작년 가을에 통보해 왔기 때문입니다. 「아들은 「여기에 와서 함께 생활해 주면 안심」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신치에서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요코야마 씨)

「도우미(간병인)강습회에 참가하고 싶다」

근무처인 「마고코로(진심) 서포트센터」에서 요코야마 미요시 씨요코야마씨는 지금 고령자 지원센터에서 주로 급식조리를 하고 있습니다. 가건물에서 이사할 때까지 한정된 기간이지만 종일제로 일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요리를 만드는 게 좋아」라고 하는 요코야마 씨. 가까운 시기에 조리사 면허를 취득하고 가설주택에서 실시 예정인 개호직원초임자(初任者)연수(이하• 도우미강습회)에도 참가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도우미강습회는 생활 클럽연합회도 구성단체가 되어 이재민의 다양한 지원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공익재단법인)공생지역창조재단이 금년 6월부터 개최를 예정하고 있습니다. 이 기획은 소비재 등의 판매를 가설주택에서 실시하는 「青空市(노천시장)」(생활클럽후쿠시마가 2011년 7월부터 주최. 현재는 가설주택 자치회가 주최하고 생활클럽후쿠시마가 지원)등을 통해 신치초 사회복지협의회(이하•사협)와의 상호협력 속에서 발안되었습니다.
사협에 의한 가건물(동내 8개소)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청취조사에서 수강희망자가 많았던 것을 받아들여 「이제 변화를 피할 수 없는 지역의 커뮤니티 생성 지원, 그리고 고령자대책의 일환」(공생지역창조재단• 생활클럽 후쿠시마)으로서 실시될 예정입니다. 요코야마 씨는 「도우미강습회에 참가해서 개호도 이해하고 활용하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남아 있는 그날의 기억

메구로 토시코 씨메구로 씨도 작년말까지의 6개월간 지역의 고령자시설에서 임시간호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도우미 강습회는 「요통이 심해지니까…」라고 망설이고 있습니다. 참가를 보류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3.11」당일의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 근무하고 있던 고령자시설을 큰 쯔나미가 덮친 것은 3시가 넘어서. 자신도 쯔나미가 덮쳐 고령자들을 도우려고 해도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후의 광경이 임시간호사로 일할 때에의 플래시백처럼 밀려들어와 가슴이 두근두근해진다고 합니다.
쯔나미로 가옥과 함께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생활클럽의 식기류도 떠내려가 버린 메구로 씨. 「오리베야키(도자기의 일종)를 좋아해서 모으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다 떠내려가서 낙심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주문한 상태지만 찬장에 넣어두지 않고 깨져도 괜찮으니까 쓰려고 하고 있습니다」
요코야마 씨와 같이 메구로 씨도 주택재건의 전망이 섰습니다. 「올해 연말은 아직 가건물생활일지도 모르겠습니다」(메구로 씨)라고는 하지만 그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편 요코야마 씨는 이전 후보지의 정비에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가건물생활은 메구로 씨보다 장기화될 거라고 합니다.
두 사람은 생활클럽을 비롯한 지원에 대해서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원해 주신 분들을 만나러 가고 싶다. 또 어딘가에서 지원이 필요한 재해가 일어나면 지원해서 가고 싶습니다」

  • 생활클럽후쿠시마의 조합원, 요코야마 씨로부터의 영상편지
    제작:생활클럽연합회 2013년3월25일

  • 생활클럽후쿠시마의 조합원 메구로 씨로부터의 영상편지
    제작 : 생활클럽연합회 2013년 3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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